경제경영

유고 내전은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세르비아의 총기소지)

아카식 레코드 777 2023. 5. 14. 16:23

1990년대 한 때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7개 지역이 하나의 연방으로 이루어진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 가서는 7개 국가로 완전히 분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고 내전은 왜 일어났고, 이 내전이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요? 

 

 

● 유고 내전 원인

 

원래 유고슬라비아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 영향하에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으로 불리다가 1929년에 국명을 '유고슬라비아 왕국' 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나치 독일과 파시즘 이탈리아로 인해서 나라가 분할되는 치욕을 맞이합니다. 

 

이후 공산주의 세력의 지도자 '요시프 브리즈 티토' 와 왕당파 세력 지도자인 '드라자 미하일로비치' 가 힘을 합쳐서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후에는 이 둘이 내전을 겪으면서 마침내 '티토' 가 승리하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이 1945년 11월 29일에 세워집니다.  

 

'티토' 의 영향하에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사회주의 공화국들과 다르게 미국과 협력하는 등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어느 진영에 머물지 않고 제3의 노선을 채택하여 나름 경제발전도 이룩하고 그랬습니다. 사회주의 시스템이지만 자본주의도 어느정도 도입된 체제였는데, '노동자 지주 관리 제도' 및 '시장 사회주의'가 대표적이 였습니다. 

 

하지만 1945년 독립 이래, 세르비아인 하에 중앙집권적 정책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서 다른 6개 지역이 반발합니다. 특히나 경제발전이 대부분 북부에서 이뤄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불균형적인 발전은 안 좋다고 생각한 중앙정부는 북부지역에서 확보한 자원을 남부에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러면 북부 지역은 왜 우리 재원을 남부에게 쓰냐고 항의할 것이고, 남부 지역은 북부 지역이 국가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맞서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경제발전이 지속화되면서 각 7개 공화국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더 필요했지만 정작 중앙정부는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자칫 독립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독립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티토 중앙정부는 신헌법을 따로 만들어서 각 지역의 요구를 반영했습니다. 

 

이렇게 자치권을 어느정도 주었지만 불만은 잠재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티토' 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중간에 조율을 해서 유고 연방이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 5월 티토가 사망합니다.

 

 

● 유고슬라비아 분열

 

티토의 죽음 이후 가난한 지역인 코소보가 먼저 연방 탈퇴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코소보 자치권 박탈을 통해서 세르비아인 중심의 중앙집권 정부를 만들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는 다른 6개 공화국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다른 공화국들이 연방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보이자 세르비아 정부는 각 공화국들과 내전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맨 처음에 슬로베니아의 경우에는 역사적, 민족적, 문화적 이해관계가 적었기 때문에 군대를 빠르게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인들이 상당히 거주했고 영토가 접해 있어서 내전이 4년간 이어졌고 어쨌든 독립에 성공합니다. 

 

북마케도니아의 경우 다른 공화국들이 힘에 부친 사이에 큰 유혈사태 없이 독립에 성공합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경우 다양한 민족 구성과 종교 등의 서로 맞물리면서 내전이 장기화 되었고, 특히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한 인종적 학살이 끔직하게 자행되었습니다. 이후 1995년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중재로 '데이턴 협정' 을 맺어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라는 단일 국가 하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과 '스르프스카 공화국' 두 체재로 합의를 맺습니다. 

 

몬테네그로의 경우 세르비아랑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존속하기로 합의하다가 2006년 개별 국가로 해체를 맞이합니다. 

 

코소보는 1998년 세르비아와 내전이 벌어졌고, 나토와 유엔의 개입으로 코소보는 자치권을 부여받고 2008년에는 독립을 쟁취합니다.

 

 

● 유고 내전의 유산

 

유고 내전이 끝나고 세르비아의 경우에는 민병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위험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도 미신고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세르비아에서 총기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